대한민국 해병대의 가장 아픈 흑역사로 기억되는 사건

오늘은 해병대의 12대 사건 중 하나이자 해병대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꼽히는 일화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해병대 35기 기초반 장교들이 김해의 공군기지를 습격한 사건이다. 이 일화는 현역 군인의 집단 근무지 이탈, 집단 패싸움, 비행기지 무단 침입 등 문제성 행동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기사화가 될 정도로 큰 이슈를 낳았다. 젊은 장교 한 명의 목숨까지 앗아갔던 사건이었다.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된 것이 큰 폭행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던 불명예스러운 ‘김해 공군기지 습격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아래 사진은 사건의 이해를 위해 참조된 사진이며 사건과 무관합니다.)

1966년 8월 9일, 동아일보에는“새벽의 패싸움으로 해병대와 공군 쌍방에 40여명 사상자(사망1)를 낸 유례없는 장교간의 부대이탈 집단 난투극이 발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집단 난투극으로 인해 당시 공군참모총장과 해병대사령관은 현지에 달려가야했으며 국방부에서는 합동수사반을 구성하여 현지조사에 나섰다. 사건 관계자 해병 20명과 공군 14명은 연행되어 조사까지 받았던 초유의 사태였다. 


사건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해병대 장교와 공군 장교들의 돌고 도는 집단폭행극이다. 그리고 집단폭행이 거듭될 수록 인원 수가 늘어나 마지막에는 129명 대 300명이라는 겉잡을 수 없는 집단패싸움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병대 장교들의 집단 근무지 이탈과 무방비 상태의 비행기지 습격 등은 지금 생각보다 상당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모든 싸움이 그렇듯,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시비에서 비롯되었다. 1966년 8월 7일 오후 7시 20분쯤에 버스에서 해병 장교와 공군 장교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해병장교 8명이 뒷문으로 승차하려는 공군장교 3명을 타지 못하게 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해병장교들은 술이 취해있었으며 버스에 올라탄 공군장교들의 작업모까지 빼앗아 서로 던지며 장난을 일삼았다. 결국 작업모를 되찾는 과정에서 공군 장교와 해병 장교 사이에 몸싸움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3명과 8명이다 보니 공군 장교들이 숫적으로 열세이다보니 일방적인 폭행에 가까웠다고 한다. 문제는 이것을 본 당시 허도창 공군상병이 비행학교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더욱 커진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공군 장교 16명은 해병 장교들의 행태에 분노하여 바로 문제의 버스를 추격하였고 8명의 해병장교들을 붙잡아 집단구타라는 보복을 가했다.

공군 장교들에게 집단구타 강한 해병 장교들은 해병학교에 돌아가자마자 곧바로 이 사실을 동료 해병들에게 알렸다. 해병 장교들 역시 이 사태에 대해 매우 분개했으며 해병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판단하였다. 따라서 이를 단순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해병대와 공군간의 자존심 대결이라 생각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를 하게 된다. 


결국 논의의 결과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해병 장교들은 치밀한 사전 계획까지 세우며 김해공군기지를 습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8일 새벽 당직 교육생 몇 명을 제외한 장교 129명이 모두 결행에 나섰다. 일절 무장은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긴 했으나 해군 장교 129명이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하여 아군의 공군기지를 습격한다는 생각은 절대 나와서는 안되는 결과였다. 


그렇게 해병 장교들은 김해 공군비행학교 입구인 평강 마을에 집결하자마자 논밭을 포복으로 이동하여 비행학교 정문을 기습했다. 적군을 소탕하기 위해 익힌 전투 기술을 아군을 기습공격하는데 사용하다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젊은 날의 치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비행학교 정문에서 보초근무병의 권총까지 빼앗으며 기습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싶었다. 조종학생 내무반에 도착한 해병 장교 129명은 계획한대로 4개 내무반에 분산 침입하여 새벽에 잠들어 있던 조종학생들에게 폭행을 가했다. 심지어 돌과 운동기구까지 동원하여 가해진 공격에 당황한 조종학생들은 잠에서 깨어 내무반 밖으로 도망쳤고 해병 장교들은 도망치는 학생들까지 돌을 던지며 추격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이로 인해 3개소 내무반의 유리창 31장 등의 기물이 파손되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해병대 일부 병력은 주번 사령실에 침입하여 주번사령 당직자인 비행학교 작전과장 최석만 중령에게 학교장과 전날 사고자를 불러 공개 사과하도록 강요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비행학교 측도 공개 사과 요구에 응하지 않고 비행학교 장병들에게 비상 소집을 내렸다. 무단 침입한 해병 장교들의 이와같은 행동을 곱게 넘어가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비상소집된 비행학교 장병 약 300여 명이 이제 반대로 해병 장교 129을 공격하게 된다. 당연히 숫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해병 장교들은 쫓기게 되었다. 이 때 추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해병 장교들은 돌을 던져 비행기 2대를 파손시켰다. 그리고 도망치던 이의일 해병 소위가 철조망 밖 늪에 빠져 익사하는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였던 청년들의 웃지 못할 패싸움에 젊은 생명 하나가 어이없이 꺼져버린 것이다.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비행기 파손이라는 국가적 손실까지 남긴 이 사건은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에 시기가 너무 좋지 못했다. 당시에는 베트남 전쟁 상황이라 장교들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동자로 퇴학당했던 학생조차 월남전으로 복귀하게 된다. 만약 현재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면 엄중한 처벌로 다스려졌겠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상 흐지부지끝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과거의 잘못은 무조건 회피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 다시는 이와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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