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항공모함의 정체

안녕하세요 밀덕쿠입니다. 전투력에 있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전투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지만 정말 그 나라의 전투력을 알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항공모함인데요. 사실 항공모함이 있는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전투력과 그 나라의 경제까지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오징어배라고 해도 믿을 만한 항공모함에, 세상에서 제일 작은 항공모함 태국의 '차크리 나루에벳'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태국의 항공모함 차크리 나루에벳, 계약 당시부터 많은 사연을 만들어 낸 미니 항공모함인데요. 미국이 국제 분쟁에 개입할 일이 있을 경우 흔히 회자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대통령이 군관계자에게 “가까운 곳에 우리 항공모함이 있나?”라고 묻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실제로 미국이 군사 행동을 시작할 경우 예외 없이 항공모함이 등장하고는 합니다. 설령 직접 작전을 벌이지 않더라도 근처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관련국들이 긴장할 만큼 항공모함은 많은 효과를 지닌 무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2010년 11월에 있었던 한미 합동군사훈련 당시에 미국의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CVN-73 USS George Washington)이 서해로 진입하자 중국이 격렬히 항의하고 나섰던 사례가 있습니다통상적으로 합동훈련은 동해에서 해왔는데, 당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여서 강력한 대북 경고를 주기 위해 이례적으로 서해에서 훈련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자신들에게도 위협적이라며 중국이 반발하였을 만큼 항공모함의 위력은 대단했는데요. 이처럼 항공모함은 패권국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으며, 실제로 제2차 대전을 기점으로 항공모함은 거함거포의 상징이었던 전함을 역사의 뒤편으로 밀어내고 바다의 제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의 슈퍼캐리어(Super Carrier)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항공모함이라고 한다면 의례히 그 정도 크기와 기능을 가진 거대 군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하고 그 정도로 커다란 항공모함을 운용하는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현재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은 중형(中型) 항공모함을 스페인, 이탈리아는 경(輕)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사실 아르헨티나나 네덜란드 같은 중소 국가들도 한때 운용하였을 만큼 항공모함은 생각보다 많은 나라에서 활약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크기와 능력의 구분이 없다면 항공모함은 무조건 강대국의 상징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중소 국가의 항공모함 중에는 태국의 차크리 나루에벳(HTMS Chakri Naruebet)도 있습니다. 미국의 항공모함 키티호크와 합동 훈련을 벌이는 차크리 나루에벳. 뒤에 있는 키티호크가 훨씬 크게 보일 정도로 경항공모함은 작은데, 그중에서도 차크리 나루에벳은 가장 작은 항공모함입니다.

 1.  누구나 인정하는 역사속 오판

무기사를 살피면 종종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목도합니다. 특히 전시에는 당장 이기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아이디어가 괜찮다 싶으면 일단 개발에 착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한데요. 그래서 독일의 비밀병기로 유명한 V-2 같은 놀라운 무기도 등장하지만 일종의 급조 항공모함 계획인 영국의 하박국(Habakkuk) 프로젝트처럼 어이없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당시 독일의 입장에서 본다면 V-2도 잘못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전 후 미국과 소련의 미사일 개발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만큼 기술적으로 놀라운 업적을 달성하였고 전쟁 중에는 연합국에게 심리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기도 하였지만 정작 전술적 효과는 미미하였습니다.

 

전쟁 말기라서 가뜩이나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였던 독일은 V-2 대신 당장 전선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무기나 보급품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인데요. 제2차 대전 당시에 등장한 최첨단 무기였던 V-2. 전후 무기 개발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나 정작 제2차 대전 당시에는 투입된 요소에 비해 전술적 효과가 극히 미미하였다고 합니다. 급박한 전쟁의 상황이 합리적인 무기 도입을 이끌지 못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런 비판도 일종의 결과론이지만, 평시처럼 보다 면밀하게 전후좌우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차크리 나루에벳은 애당초 예정하지도 않았고 전시처럼 급한 상황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도입이 이루어졌고 이후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태국 해군의 공식적인 견해는 알 수 없지만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이 획득이 이루어지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2.  태국 해군의 남다른 의지로 인한 발전

태국은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 베트남 전쟁의 사례에서 보듯이 동남아시아에서 분쟁이 벌어질 경우 자의든 타의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와 타이 만을 함께 영유하고 있고 말레이 반도 서쪽의 안다만 해와 말라카 해협을 통해서는 인도, 미얀마, 인도네시아와도 연결이 됩니다. 이처럼 태국은 주변국과 육지뿐 아니라 바다로도 가까이 접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해군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지만 국력이 크지 않아 오랫동안 전형적인 연안 해군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이룬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해군력 확충에 나선 태국은 연근해에서 수송 및 소규모 부대의 상륙을 지원할 수 있는 다목적함의 도입을 검토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1989년 독일 브레메 벌컨(Bremer Vulcan)사와 배수량 7,800톤 규모의 수송함 건조 계획을 체결하였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도입한 배수량 430톤 규모의 마차누(Matchanu)급 잠수함. 태국은 제국주의 시절 영국과 프랑스가 중립 지대로 남겨 놓은 덕분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만 의존하지 않고 나름대로 국방력을 구축에 신경을 써서 1930년대에 잠수함대를 운용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바로 그해 11월에 발생한 초대형 태풍 게이(Gay)가 타이 만을 관통하며 엄청난 피해를 주었습니다. 구호 활동에 애를 많이 겪은 태국 해군은 7,800톤 급의 수송함으로는 추후 비슷한 재난이 재발 될 경우 그다지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브레메 벌컨과의 계약을 파기한 후 충분한 보급품을 탑재하고 헬리콥터도 운용할 수 있는 배수량 1만 톤 규모의 LPD 타입의 상륙함을 도입하기로 정책을 선회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LPD 제작 경험이 있는 스페인의 국영 바잔(Bazán, 현 나반티아 Navantia) 조선소에 건조를 의뢰했는데요. 여기까지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올바른 정책이라 할만 했습니다. 그런데 세부적인 협상을 논의하던 중, 바잔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게 되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LPD대신 비슷한 가격에 경항공모함을 사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스페인 해군의 LPD 갈리치아(SPS Galicia). 바잔 조선소는 각종 상륙함을 비롯하여 다양한 군함을 건조한 경험이 많은 조선사입니다.


 3.  예정치도 못했던 서둘렀던 도입과정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건조하여 1988년부터 스페인 해군이 사용 중인 배수량 16,700톤의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Príncipe de Asturias)를 기반으로 하여 조금 축소된 경항공모함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스키점프대처럼 함재기 운영과 관련된 시설을 제외한다면 LPD나 경항공모함의 기본적 선체 구조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요. 지난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 현지에 상륙할 영국 해병대와 장비의 상당수가 경항공모함을 타고 이동하기도 하였습니다. 항공모함이라는 말에 구미가 당겼지만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태국이 망설이자 스페인은 결정적인 당근을 하나 더 제시하였습니다. 퇴역 예정인 6기의 해리어(스페인 명 AV-8S)기를 무상으로 제공하여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1992년 3월 LPD보다 약 10퍼센트 정도 비싼 3억 3,600만 달러에 계약이 체결되고 건조가 개시되었는데요. 그야말로 얼떨결에 구매하였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항공모함이었지만 건조 당시부터 현 왕실인 ‘차크리 왕조의 영광’이라는 의미의 차크리 나루에벳으로 함명이 명명되고 유사시 국왕을 위한 별도 선실도 설치하였을 정도로 태국 해군의 기대는 컸습니다.  일사천리로 건조가 이루어져 1996년 1월 진수되어 각종 해상시험을 끝내고 1997년 3월 태국 해군에 인도됨으로써 태국은 당당히 14번째 항공모함 보유국으로 이름을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건조 직후 기본 베이스인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하)와 시험 항해 중인 차크리 나루에벳

4.  바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문제거리들

하지만 취역과 동시에 수많은 문제점이 속속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수직이착륙기를 이용하지만 독도함보다 작은 만재 배수량 11,486톤 크기로는 최대 10기 정도의 함재기 운용도 버거워 항공모함으로써 원활히 임무를 수행하는데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입니다. 작아서 싸게 구매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 인도에 판매를 시도하였을 때는 항공모함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기 힘든 크기라고 평가 받아 거절 당하였다.차크리 나루에벳에서 이함 준비를 하는 AV-8S. 원활히 함재기를 운용하기에는 너무 작아서 항공모함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함께 작전을 펼칠 호위함이 없다는 점이었는데요. 평시나 재난 구호 임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전시를 대비해야 하는 항공모함에게 이는 너무 치명적이었습니다. 

더구나 추후에 도입할 계획조차 수립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미국의 슈퍼캐리어라도 호위 전력 없이 항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차크리 나루에벳은 도입과 동시에 군사적 능력 상당 부분을 상실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또한 나중에 장착할 예정으로 각종 센서나 방어용 무장을 생략하고 먼저 선체만 인도받았기에 함 자체도 성능이 나빴는데, 1997년 닥친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그나마 세워졌던 업그레이드 계획도 모두 취소 또는 연기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2006년 어떤 미련도 두지 않고 전량 도태시켰을 만큼 무상으로 제공받은 해리어들이 운용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는 점은 차크리 나루에벳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만든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호위 항공모함 데달로(SNS Dédalo)에서 출격한 AV-8S. 스페인은 경항공모함 도입 대가로 6기의 AV-8S를 제공하여 주었으나 퇴역 직전의 기종이었습니다.

 5.  실패로 태어난 나루에벳의 정체

결국 현재 차쿠리 나루에벳은 고정익기 없이 6~8기 정도의 헬리콥터만 운용하게 되면서 헬리콥터 초계 항공모함으로 지위가 변경되었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LPD로 건조했다면 현재 공간만 차지하는 스키점프대 같은 시설을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인데 말이죠. 결국 바다에서 작전을 펼치는 것보다 사타힙(Sattahip) 군항에 정박하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한마디로 항공모함이라는 단어에 유혹에 너무 도취되어 준비하여야 할 부분을 간과한 결과였습니다. 스페인 해군의 호위함들과 항진 중인 차크리 나루에벳, 태국에 인도되기 전 시험 성능 중인 모습으로 보입니다. 정작 태국은 차크리 나루에벳을 호위할 수상함이 없다시피 하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3년 캄보디아에서 반 태국 시위가 벌어졌을 때 긴급 출동하여 자국민을 소개함과 동시에 무력시위를 벌여 캄보디아 정부를 긴장시켰는데요. 

2004년 동남아를 휩쓴 쓰나미 당시에는 구호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최초 도입 단계부터 구호 임무도 중요한 목적이기는 했으나 한 나라 해군의 전략자산이라 할 수 있는 항공모함에게 그런 임무가 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단지 구호나 구난이 목적이면 저렴한 전용 선박을 구매하는 것이 당연히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바다로 나가 작전을 벌일 수는 없지만 목적이나 기능이 상실되어 값비싸게 도입한 항공모함이 항구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면 이는 상당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항공모함을 운용하였다는 경험과 자긍심을 얻기 위해 태국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기 도입에 있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차크리 나루에벳은 나름대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도입 후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항공모함으로서 그 존재감만은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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